fnctId=bbs,fnctNo=13289 게시물 검색 검색하기 제목 작성자 RSS 2.0 총 게시글9 건 게시글 리스트 총통 작성자 이재진 조회 501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27 총통 부산시지정문화재 지정번호 : 제168호지정일자: 2016-03-16 승자총통은 조선 선조 대에 개발된 소형화기로 육ㆍ해전에서 개인용 휴대용 무기로 널리 보급되어 활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조선군의 개인 화기로 활용되었다. 『난중일기』의 기록이나 전남 해안에서 다량으로 인양된 유물 등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들이 승자총통 계열의 총통을 많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승자총통은 구경(口徑)이 가는 점이 특징이다. 병부(柄部), 약실부(藥室部), 통신부(筒身部) 등이 하나로 주조된 형식으로, 통신부에 6개의 죽절(竹節)이 양각되어 있어서 7마디로 구획되어 있다. 병부에 “만력 계미년(1583년) 9월 승자총통을 만들었으며, 무게는 5근 8량이다. 김해의 장인 강룡(江龍)이 만들었다. 화약은 7전이고, 중탄환은 8개, 소탄환은 10개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음각 명문이 새겨져 있다. 외형적인 구조나 형식이 조선시대 승자총통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고, 제작처와 장인이 명확하며, 제작연도로 보아 여진정벌과 임진왜란ㆍ병자호란 때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조선군의 주력 무기로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제작시기가 다른 총통에 비해 비교적 빠르고 전체적인 형태에서도 별다른 손상이 없이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우리나라 화약 병기(兵器) 발달 과정의 이해, 국방과학기술 문화재 연구 및 조선시대 수공업사 연구 등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다. 훈몽자회 책판 작성자 이재진 조회 385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27 훈몽자회 책판 부산시지정문화재 지정번호 : 제166호지정일자: 2015-11-18 1527년(중종 22)에 최세진(崔世珍)이 편찬한 훈몽자회는 당시 한자 학습에 사용된 천자문(千字文)과 유합(類合)의 내용이 경험세계와 직결되어 있지 않음을 비판하고, 새·짐승·풀·나무의 이름과 같은 실자(實字)를 위주로 교육할 것을 주장하여 편찬한 어린이 한문학습서로 상·중·하 3권으로 되어 있다.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훈몽자회 책판은 인(引), 상·중·하권 총 52장으로 구성되었다. 비록 4장이 결판되었으나 국어학사적으로 귀중한 훈몽자회 문헌의 원판목이 현존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으며, 문화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훈몽자회가 훈민정음 창제 이후 우리 국어의 음운사(音韻史)와 어휘사(語彙史) 자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책판은 보고된 적이 없으며, 문화재로 등록된 사례도 없어 희소가치가 높다.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훈몽자회 책판은 국내에 조사 보고된 적이 없는 판본이고,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우리 국어의 음운사와 어휘사 변천을 이해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담고 있는 문화재이다. 금동십일면관음보살좌상 작성자 이재진 조회 471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27 금동십일면관음보살좌상부산시지정문화재지정번호 : 제154호지정일자: 2015-03-18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금동십일면관음보살좌상은 머리에 높은 보관을 썼고, 머리에 쓴 보관은 2단을 이뤄 화불(化佛)을 포함하여 십일면을 조각하였는데 그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 있으며, 상단에 앉아 있는 화불은 대좌를 갖추고 있다. 보관대(寶冠帶)에는 다섯 잎의 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조각하고 그 좌우 측면에는 리본모양으로 작은 매듭이 묶여져 있다. 왼손의 검지를 구부려 세우고 오른손을 감싼 형태의 지권인(智拳印) 모양의 수인(手印)을 취하고 앉아 있는 보살좌상으로, 신체에 비해 큰 머리, 매우 좁은 어깨, 늘씬한 허리, 화려한 목걸이와 영락장식 등이 특징인데, 세밀한 정교함은 부족하지만 화려하고 아름답다. 머리에는 뭉툭하고 큼직한 보계(寶?)가 표현되었으며, 머리카락은 음각으로 새겼다. 얼굴은 갸름하지만 뺨 부분에 살이 올라 통통하고 백호(白毫), 반달형 눈썹, 좌우로 길게 뜬 눈, 뾰족한 코, 아랫입술이 도톰한 입 등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며,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상체에는 두 개의 천의(天衣)를 두르고 하반신에는 치마를 입었다. 하나의 천의는 어깨 위로 둘러 마치 두광(頭光)처럼 머리 뒷면 중앙까지 치솟아 표현되었고, 양쪽 팔을 둘러 측면으로 흘러내리고 그 끝을 반전시켜 마무리하였는데, 굴곡진 곡선이 역동적이다.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금동십일면관음보살좌상은 십일면관음이라는 도상적 특징, 지권인의 수인, 그리고 천의를 광배(光背)처럼 두른 점, 화려한 장식 등에서 전해 오는 사례가 드문 이색적인 작품이다. 제작 시기는 고려 중기인 12~13세기경, 늦어도 14세기 이전으로 판단되며, 조형적 우수함과 더불어 고려시대 보살상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작성자 이재진 조회 368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27 목조아미타여래좌상부산시지정문화재지정번호 : 제144호지정일자: 2014-05-21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작은 크기의 원불이다. 수인(手印)은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이며, 고개를 숙였지만 자세가 곧고 당당하며 몸에 비해 머리는 큰 편이다. 방형의 얼굴은 넓은 이마, 반달형 눈, 오뚝하면서 작은 코, 입꼬리가 올라간 입을 표현하여 옅은 미소를 띤 온화한 인상을 풍긴다.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별도로 보관 중이다. 복장물목은 발원문(결연문), 황초폭자, 후령통, 팔엽개, 오방경, 오색사, 오저, 오채번, 대방광불화엄경?반야경, 보협인다라니, 대교왕경 등이다. 삼베 재질의 황초폭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종이이다 이 불상은 동참결연문인 발원문 내용을 통해 1765년 4월 화사 상정(畵師 尙淨)에 의해 제작되었고, 원불의 주인공은 승려 영회(永誨)였음이 밝혀졌다. 상정은 18세기 중?후반에 전라도에서 주로 활동한 조각승으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여래상, 불국사 대웅전 삼존상 등 현존하는 유명한 불상들을 개금하였는데,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도금양공 호남 상정(鍍金良工 湖南 尙淨)’으로 언급될 정도로 개금에도 능했던 전라도 화승이다.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크기는 작지만 얼굴, 옷주름, 연화좌 위로 흘러내린 옷자락의 표현 등에서 조각가인 상정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며, 제작시기, 제작자, 용도와 기능이 명확하여 18세기 불상 연구의 자료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다. 칠성도 작성자 이재진 조회 416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27 칠성도 부산시지정문화재 지정번호 : 제143호지정일자: 2014-05-21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칠성도는 3폭의 비단을 엮어 마련한 바탕에 채색을 베푼 불화로 전반적으로 안료의 박락과 본지의 훼손이 확인되나, 화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화면 향우측과 하단 향좌측의본지 박락 부분을 통해 원화 뒷부분에 본 칠성도의 초본(草本)이 함께 배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화면을 상하 2단으로 구분하여, 상단에는 원형의 커다란 방광에 감싸인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월광보살을 배치하고, 방광(放光)의 좌측 외곽에는 칠성동자 4위, 반대쪽 우측에는 칠성동자 3위가 합장한 모습으로 각각 시립하고 있다. 하단에는 구름을 경계로 전면에 칠원성군을 일렬로 배치하였고, 칠원성군 위쪽에는 관복을 착용한 자미대제와 좌우 보필성(輔弼星)이 시립하고 있다. 그리고 천공(天空)에는 구름과 둥근 일월상(日月相)을 배치하였다.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칠성도는 19세기 중반 경에 제작된 중소형급의 채색불화로, 본지와 안료의 박락이 다소 진행되었으나, 도상 파악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 불화의 제작을 주도한 수화승은 1820~60년대에 걸쳐 활발하게 활동한 해운당 익찬(海雲堂 益贊)이다. 익찬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의 「석풍계편(釋楓溪編)」에 풍계의 제자로 언급되어 있으며, 대흥사, 송광사, 선암사, 화엄사, 쌍계사 등지에서 활동한 화승이다. 본 칠성도의 화면 구성 및 천공의 일월상 표현 등은 익찬이 제작한 대둔사 대광명전 칠성도 (1845년), 대둔사 칠성도 (1850년) 및 연주암 극락전 칠성도 (1887년)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칠성도는 19세기 칠성도 도상 연구는 물론이고, 화사 익찬의 화풍을 파악하는데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아미타내영도 작성자 이재진 조회 469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27 아미타내영도부산시지정문화재지정번호 : 제142호지정일자: 2014-05-21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아미타내영도는 견본흑지(絹本黑地)에 금니(金泥)로 제작된 선묘불화(線描佛畵)이다. 화면 중앙에 크게 묘사된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협시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례감이 있게 묘사한 아미타내영도 형식에 후면 좌우 여백에는 반신상 형식의 가섭과 아난을 배치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아미타삼존은 각각 줄기에서 피어난 2개의 연꽃을 두 발로 밟고 서있는 답할좌(踏割座)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정면관의 아미타여래는 눈?코?입이 작게 모여 있는 달걀형의 얼굴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관음보살은 정병(淨甁)을, 대세지보살은 두 손으로 연꽃을 들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답할좌와 함께 이 시기의 불화에서 많이 보이는 형식이다. 이 작품은 화기를 통해 1813년에 성총(性聰)이라는 화승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성총의 작품은 1755년 고성 건봉사 감로도와 1764년 장육사, 1765년 동화사, 1771년 구미 수다사 불화 등이 알려져 있다. 이 불화는 조선 후기에 경상도 지역에서 제작된 선묘불화의 하나로, 경제적 비용 절감과 조성 시간의 단축을 위해 소규모 선묘불화로 제작되어 스님들의 수행공간에 귀의처로서 모셔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아미타내영도는 조선 후기 선묘불화 중 흑지 바탕에 금니로 제작된 흑탱(黑幀)으로 당시에 많이 제작된 홍탱(紅幀)에 비해 희소성을 지닌 불화이며, 1813년이라는 명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총이라는 화승의 작풍(作風)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분청사기 마흥목처 신반진씨 지석 작성자 이재진 조회 357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27 분청사기 마흥목처 신반진씨 지석부산시지정문화재지정번호 : 제136호지정일자: 2014-01-22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분청사기 마흥목처 신반진씨 지석은 분청사기 태토를 사용하여 앞·뒤가 납작하게 붙은 발형(鉢形)처럼 성형하여 지문(誌文)을 백상감(白象嵌) 기법으로 앞뒷면에 새겨 넣은 지석이다. 지문은 앞면에 8행 58자, 뒷면에 7행 64자 등 총 15행 122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문의 내용은 묘주 (墓主) 남편의 본관과 거주지, 묘주의 출신지, 부모, 생몰년, 묘주를 장사 지낸 해와 장사지, 묘주의 자녀, 묘를 함부로 훼손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경고문, 조성연월일 등의 순으로 적혀있다. 마흥목처 신반진씨 지석은 형태가 특이할 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에 도자기로 만들어진 15세기 지석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며, 당시의 행정구역과 지명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지석은 경북 고령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령은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에 상품(上品)의 자기소(磁器所)가 있었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어 역사 기록과도 부합하는 자료이다.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분청사기 마흥목처 신반진씨 지석은 ‘성화 2년(成化 二年, 1467년)’이라는 절대 제작연대와 유물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분청사기 지석으로, 조선 초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묘지(墓誌)이자 당시의 행정구역과 지명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상품의 자기소에서 번조되었던 도자기라는 자료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다. 자수책거리병풍 작성자 이재진 조회 617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27 자수책거리병풍 부산시지정문화재 지정번호 : 제74호지정일자: 2006-11-25이 작품은 화면에 배경 없이 책을 중심으로 문방구와 도자기, 고동기(古銅器), 소과(小菓) 등의 기물(器物)을 배치한 나열식 책거리그림을 본으로 하여 비단에 전통 자수로 제작한 8폭의 병풍이다. 병풍의 내용은 학업정진(學業精進), 입신출세(立身出世), 재복(財福), 자손번창, 무병장수 등으로, 10대부터 80대까지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각종 기물을 통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자수병풍은 기물들의 표현이 아주 세밀하고 사실적이며 형태가 정확하고 반듯할 뿐 아니라, 명암법과 투시도법이 적용된 점, 그리고 색채도 강렬한 원색보다 고아하고 은은한 톤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수준 높은 도화서 화원이 밑그림을 그리고 궁중의 수방(繡房)에서 궁수(宮繡)를 놓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묘사된 내용으로 보아 홍문관, 독서당, 규장각 등 궁궐의 입직소(入直所)에서 사용하였거나, 내사품(內賜品)으로 양반가의 사랑채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자수 책거리병풍은 책가도(冊架圖)의 내용 구성이 우수하고 자수 기법이 다양하며, 자수에 사용된 명주실의 나염 상태는 격조가 높다. 더욱이 수본(繡本)으로 제작되어 군더더기 없이 정제되어 있으며, 8폭의 그림마다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문화재의 효율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2015년 3월부터 부산대학교박물관에 위탁보관 중이다. 울주 대곡사지 오층석탑 작성자 이재진 조회 511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26 울주 대곡사지 오층석탑 부산시 지정 문화재지정번호 : 제9호지정일자: 1972-06-26이 탑은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삼정리 대곡사지(大谷寺址)에 있었던 것인데 1966년 11월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이전 복원한 것이다. 무너져 있는 탑을 수습해 왔기 때문에 옥개석의 모서리 부분은 파손된 것이 있다. 기단부와 상륜부가 없어져 이전할 때 박물관에서 보충하였다. 현재의 탑의 높이는 3.2m로 약간 고상한 느낌을 준다. 제1층 탑신의 옥신석에는 동쪽면에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 서쪽면에 광목천왕상(廣目天 王像), 남쪽면에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 북쪽면에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 등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면석에 꽉 들어차게 부조되어 있다. 이 사천왕상은 조각이 정교하지는 못하나 곡선이 부드러우며, 각 천왕의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는 점이 이 탑의 특색이다. 각층의 탑신에는 모서리 기둥(우주,隅柱) 모양을 새겨 놓았으며, 1층 탑신의 높이에 비해 2층 탑신의 높이는 1/3 정도로 감소되고 있으나, 3, 4, 5층의 탑신 높이는 거의 비슷한 형태이다. 옥개석에는 각기 3단의 받침과 1단의 탑신 괴임이 있으며, 전각(轉角)은 약간씩 반전되어 있다. 처음 1 끝 처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