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 농소리패총
- 1964년 9월 26일부터 10월 1일에 걸쳐 발굴조사하였으며 경남 김해군 주촌면 농소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후기의 패총윰적으로, 강 건너 동남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수가리패총이 있다.
층위는 제Ⅰ층 표토층, 제Ⅱ층 순패각층, 제Ⅲ층 패각이 섞인 흑식부식토층, 제Ⅳ층이 패각이 섞인 적색점토층으로 되어 있었다. 인공유물은 ⅢㆍⅣ층에서만 발견되었으며, 두층의 유물은 층위에 따른 시대적인 차이가 거의 없는 단일 문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토기의 태토는 점토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색조는 회갈색과 적갈색을 띠는 두 종류가 있고, 구연은 곧은 홑구연과 겹구연이 있다. 퇴화된 빗살무늬토기의 마지막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지만, 규모에 비해 유물의 출토량은 매우 빈약하였다.
- 1964년 9월 26일부터 10월 1일에 걸쳐 발굴조사하였으며 경남 김해군 주촌면 농소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후기의 패총윰적으로, 강 건너 동남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수가리패총이 있다.
- 부산 다대포패총
- 1966년 8월에 발굴 조사한 유적으로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가야시대의 패총이다. 유적의 층위는 제1층이 표토층, 제2층이 패각이 섞인 부식토층, 제3층이 흑색 부식토층, 제4층이 역석층으로 되어 있었다. 유물은 시기를 달리하여 2개의 문화층 즉, 제2층과 제3층에서 출토되었다. 적갈색연질토기와 도질토기로 대표되는 상층은 가야시대의 문화상을 보여주며, 융기문토기, 빗살무늬토기, 붉은간토기로 대표되는 하층은 신석기시대 문화를 간직한 층으로 남해안 신석기시대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대포패총은 비록 규모나 출토 유물의 양은 적으나 뚜렷한 층위를 가진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와 가야시대의 두 시기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창원 성산패총
- 경상남도 마산시 외동의 성산부락에 있는 해발 49m의 낮은 언덕 경사면에 형성된 패총 유적으로 동북쪽으로 도롱를 사이에 두고 가음정동패총이 있는 능산과 인접해 있다. 본 조사는 1968년 9월에 실시되었으면 A, B, C 세 트렌치를 층위별로 발굴하여, 표토층, 조가비층, 흑갈색점토층, 황갈색점토층(黃褐色粘土層) 등 4개층을 확인하였다. 유물은 도질토기와 연질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소량의 흑도계 토기도 있다. 또한 시루, 어망추와 방추차, 골각기와 석기도 출토되었다.
1974년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실시된 이 패총의 발굴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각종 석기류와 무문토기를 비롯하여 도질토기, 연질토기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 경상남도 마산시 외동의 성산부락에 있는 해발 49m의 낮은 언덕 경사면에 형성된 패총 유적으로 동북쪽으로 도롱를 사이에 두고 가음정동패총이 있는 능산과 인접해 있다. 본 조사는 1968년 9월에 실시되었으면 A, B, C 세 트렌치를 층위별로 발굴하여, 표토층, 조가비층, 흑갈색점토층, 황갈색점토층(黃褐色粘土層) 등 4개층을 확인하였다. 유물은 도질토기와 연질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소량의 흑도계 토기도 있다. 또한 시루, 어망추와 방추차, 골각기와 석기도 출토되었다.
- 부산 오륜대고분군
- 부산시 금정구 선동 회동 수원지의 북쪽에 위치하며 1971년도에 발굴 조사되었다. 석곽묘(石槨墓) 28기, 옹관묘(甕棺墓) 1기, 지석묘(支石墓) 1기 등 모두 30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는데, 지석묘를 제외하고는 모두 5세기 후반대로 편년된다. 석곽묘(石槨墓)는 모두 소형으로 부곽(副槨)이 딸린 것은 1기 뿐이다. 이 무덤들은 출토유물로 보아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형성된 분묘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이 고분 유적의 일부가 1996년도에 저수지 고갈로 다시 노출되어 부산시립박물관(釜山市立博物館)에 의해 정밀 조사가 이루어졌다
- 부산 화명동고분군
- 부산시 북구 화명동 산 300번지 일대에 위치하며 1972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5세기 전반대에 속하는 석곽묘(石槨墓) 7기가 조사되었는데, 초기의 수혈식석곽묘 형태를 갖추고 있어 낙동강 동안의 수혈식석곽묘 변화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 유적은 완전히 소멸하였다.
- 부산 금곡동 율리 암음과 패총
-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율리마을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암음과 패총 유적이다. 낙동강 하류에 위치하는 율리마을 뒷산 골짜기에 있는 길이 2.8m, 높이 2m 정도의 바위그늘(岩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1972년 12월부터 1월 사이에 전면 발굴하였는데, 층위는 표토층을 제외하고 3개층으로 나뉘어지고 유물의 차이는 없었다. 출토 유물은 토기, 석기, 장신구 등이며, 그 양은 많지 않았다. 토기는 붉은간토기 2점 외에는 모두 빗살무늬토기로 모양은 밑이 뾰족하거나 둥글고 위가 벌어진 V자 혹은 U자형의 심발형이다. 퇴화(退化)된 단사선문(單斜線文)이 시문되고, 이중구연(二重口緣)을 가진 신석기시대 말기(新石器時代末期)의 유물이 주류이다. 바위그늘 안에서는 노지(爐地)가 3개 확인되었고 그 앞쪽에서 적석유구(積石遺構) 여러개가 조사되었다.
- 경주 미추왕릉지구 고분군
- 경주 미추왕릉 지구의 정화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연합 발굴로서, 우리 박물관에서는 1973년 10월 27일부터 1974년 1월 20일까지 5지구와 7지구를 발굴하였는데, 적석목곽묘 8기, 수혈식석곽묘 9기, 옹관묘 9기, 소형적석묘 2기가 조사되었다. 적석목곽묘는 원형 또는 타원형의 호석을 돌리고 목곽의 주위와 상부에 냇돌을 쌓은 형태이다. 옹관묘는 대부분이 대형묘의 배장묘로 사용되었고, 단독묘는 1기 뿐이었다. 여기서는 동일 지역내에서 다양한 형태의 묘제와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신라 묘제와 문화의 시기적인 변천 및 계층구조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 부산 학소대고분군
- 복천동고분군의 일부로서 구릉의 동쪽 경사면에 해당된다. 1974년 9월 17일부터 10월 26일까지 주택 건설로 파괴된 목곽묘 1기와 석곽묘 4기가 발굴되었다. 목곽묘는 바닥에 시상석을깐 형태이고, 1구 3호의 석곽묘는 상부에 돌을 쌓아 봉분을 측조하였다. 여기서는 다수의 토기와 금속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서 마갑편과 철제투구 및 비늘갑옷 소찰은 가야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 김해 내동지석묘
- 1976년 1월에 발굴 조사하였다. 이 유적은 회현리패총에서 서북방으로 1.7Km 정도 떨어진 김해시 내외동 경운산 산록에 위치한다. 옛날에는 더 많은 지석묘가 있었으나 마을이 형성되고 밭이 경작되면서 대부분 파괴되어 극히 일부만 남아있다. 당시 3기를 발굴 조사하였는데, 제1호 지석묘에는 한국식동검 1점과 검은간토기(黑陶) 1점 외 무문토기편과 단도마연토기편이 소량 출토되었다. 제2호, 제3호 지석묘는 남방식이며, 그 지하에서 어떠한 유구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 유적의 연대는 제1호 지석묘에서 출토된 한국식동검과 검은간토기의 형식을 기준으로 할 때 대략 B.C 4~3세기로 추정된다.
- 김해 예안리고분군
- 경남 김해군 대동면 예안리 시례부락에 위치하는데 1976년부터 1980년 사이에 모두 4회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고, 유적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사적 제 26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유구는 4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었는데, 목곽묘(木槨墓) 59기, 수혈식석곽묘(石槨墓) 93기, 석실묘(石室墓) 13기, 옹관묘(甕棺墓) 17기 등 모두 183기가 확인 조사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묘제가 약 4겹 정도 중복되어 있어 이를 통한 묘제, 토기 등의 연구는 가야 묘제, 토기 연구의 근간이 되고 있다. 또한 보존 상태가 양호한 인골도 다량 출토되어 우리나라 고대인(古代人)의 형질인류학(形質人類學)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 김해 수가리패총
- 부산-마산 고속도록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긴급 구제 발굴된 패총으로 1978년 6월 9일 ~ 8월 16일과 1979년 3월 5일 ~ 5월 1일 2회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경남 김해군 장유면 수가리 가동마을 내에 있는데 신석기시대 중기ㆍ말기의 패총 4개소 삼한시대 패총 1개소를 발굴하였는데, 대부분 파괴되었고, 3구와 5구 패총만이 상태가 양호하였다. 출토 유물은 빗살무늬토기 다수와 석기, 골각기, 패제품이 출토되었다.
수가리 3구 패총의 빗살무늬 토기는 층위별 특징을 중심으로 크게 IㆍIIㆍIII식 의 세 가지 형식과 문화기로 분류 구분한다. 이 세 문화기는 각각 남부 지방 빗살무늬토기문화의 중기, 후기, 말기에 해당되며 이 유적은 남부지방 빗살무늬토기 편년연구에 지표가 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 부산-마산 고속도록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긴급 구제 발굴된 패총으로 1978년 6월 9일 ~ 8월 16일과 1979년 3월 5일 ~ 5월 1일 2회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경남 김해군 장유면 수가리 가동마을 내에 있는데 신석기시대 중기ㆍ말기의 패총 4개소 삼한시대 패총 1개소를 발굴하였는데, 대부분 파괴되었고, 3구와 5구 패총만이 상태가 양호하였다. 출토 유물은 빗살무늬토기 다수와 석기, 골각기, 패제품이 출토되었다.
- 함양 백천리고분군
- 경남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척지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수혈식장방형석실 및 석곽묘 유적이다. 발굴 당시 이곳에는 직경 10 ~ 30m, 높이 2 ~ 3m의 고분 20여기와 그 사이사이에 무수하게 분포되어 있는 작은 수혈식석곽묘가 구릉 주위에 열을 지어 남아 있었다. 1980년 3월 25일부터 5월 25일 2개월간 고총고분 5기와 그 주변에 있는 작은 수혈식석곽묘 21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5세기 후반대 ~ 6세기 중엽에 설치된 무덤으로 토기 200여점, 철기 190여 점, 장신구 약간이 출토되었다. 이 중 토기는 모양이나 종류, 공반관계로 보아 고령의 대가야 문화권에 속함을 확인할 수 있다.
- 경남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척지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수혈식장방형석실 및 석곽묘 유적이다. 발굴 당시 이곳에는 직경 10 ~ 30m, 높이 2 ~ 3m의 고분 20여기와 그 사이사이에 무수하게 분포되어 있는 작은 수혈식석곽묘가 구릉 주위에 열을 지어 남아 있었다. 1980년 3월 25일부터 5월 25일 2개월간 고총고분 5기와 그 주변에 있는 작은 수혈식석곽묘 21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 부산 복천동고분군
- 동래구 복천동 동래읍성(東萊邑城) 내 중앙을 가로 지르며 야트막히 뻗어내린 구릉 전체에 분포하고 있다. 이 유적은 우리 박물관을 비롯하여 동아대학교박물관, 부산시립박물관에 의해 120여기의 고분이 조사되었고, 9,8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우리박물관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4차례에 걸쳐 조사하였는데 구릉의 정상부 즉, 중심 고분군의 조사는 우리박물관이 대부분 실시하였다. 대형분들은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 순차적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늦은 시기의 무덤이 만들어져 있으며 구릉의 사면에는 소형분들이 등고선 방향과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유물은 갑주류, 마구류, 무기류 등 철기류와, 금동관을 비롯한 장신구류, 다양한 토기류가 출토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수장급이였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 부산 당감동고분군
- 1981년도에 조사된 유적으로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3동에 위치한다. 당평초등학교 부지 조성 공사중 발견되어 부지내만 발굴하고 서쪽의 고분군 중심지는 그대로 남겨 두었으나 그 후 학교가 들어서면서 파괴되어 지금은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유구는 삼국시대 수혈식석곽묘 33기, 조선시대 민묘(民墓) 4기 등 38기가 조사되었는데, 석곽묘는 모두 5세기 후반에 속한다.
- 울주 화산리고분군
- 경남 울주군 온산면에 위치하는데 온산공단 부지 내에 포함되어 1982년도에 긴급 조사된 유적이다. 유적은 파괴가 극심하여 유구 바닥돌만 겨우 남아 있었다. 유구는 화장묘 11기를 비롯하여 6세기 전반에서 7세기 후엽에 걸치는 석실묘(石室墓), 석곽묘(石槨墓)가 조사되었고, 특히 인화문(印花文)토기 등 늦은 시기의 유물이 다양하게 출토되어 이 시기의 고분 문화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였다.
- 울주 양동유적
- 1984년 4월 30일부터 5월 28일까지 한달간에 걸쳐 조사된 유적이다. 경남 울산시 청량면 양동부락 일대에 울산시 정수장 설치 공사로 대부분 파괴되고 일부 남아있던 유구를 긴급 구제발굴된 것이다. 무문토기 전기(前期) 거주지 5동(棟)과 36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무덤은 5세기 전반대로 편년될 수 있는 폭에 비해 길이가 긴 소위 경주형목곽묘(慶州形木槨墓)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적석목곽묘가 확인되었다.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로 변화 ․ 발전해갔음을 알 수 있으며, 신라 특유의 묘제인 적석목곽묘의 분포 영역을 나타내주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부산 망미동분묘군
- 조선시대 중기(15~16세기) 무렵에 조영된 일반 서민들의 군집묘 유적이다.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 주공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하며, 1985년 3월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된 유구는 목관묘를 중심으로 한 토광묘로 모두 47기이다. 목관과 묘광 사이에 조개가루를 채워 만든 목관묘(木棺墓), 헝겊 등으로 싸서 바로 묻은 직장토광묘(直葬土壙墓) 등이 있다.
유물은 토광 한쪽벽에 벽장 모양으로 파내어 만든 감실(龕室) 안에 자기병(磁器甁), 청동합, 청동수저, 철제가위 등을 세트로 부장한 것도 있다. 출토 유물은 분청사기, 백자를 주종으로 하는 자기류 41점, 합, 수저를 중심으로 하는 청동제품 56점, 가위 등 철제품 19점, 옥류 15점 등 총 135점이다.
망미동 조선시대 무덤유적 발굴의 의의는 첫째, 조선시대의 군집묘를 정식으로 발굴 조사함으로써 유구와 유물, 또는 유물 상호간의 공반 관계를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기와 청동제품 등 금속기류, 장신구류들이 공반 출토되어 상세한 유물 편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고고미술사학, 민속학적 연구에도 귀중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 조선시대 중기(15~16세기) 무렵에 조영된 일반 서민들의 군집묘 유적이다.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 주공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하며, 1985년 3월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된 유구는 목관묘를 중심으로 한 토광묘로 모두 47기이다. 목관과 묘광 사이에 조개가루를 채워 만든 목관묘(木棺墓), 헝겊 등으로 싸서 바로 묻은 직장토광묘(直葬土壙墓) 등이 있다.
- 사천 늑도유적
- 경상남도 사천시(舊 삼천포시) 늑도동에 위치하며 섬 전체가 삼한 전기의 대규모의 복합 유적이다. 1979년 처음으로 유적의 존재가 알려지고, 이후 수 차례의 지표조사와 1985년과 86년의 2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유적의 성격이 밝혀지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4지구로 나누어 실시되었는데, Ⅰ지구는 주거지(ⅠA)와 분묘(ⅠC), Ⅱ ․ Ⅲ지구는 패총, Ⅳ지구는 주거지였다. 주거지는 장방형이 12기이고, 벽면에 판석을 세운 원형주거지가 1동이었다. 무덤은 토광묘와 옹관묘가 주류를 이룬다. 토광묘는 아무런 시설이 없는 순수 토광묘가 25기, 돌로써 뚜껑 시설을 한 석개토광묘(石蓋土壙墓)가 1기, 토기 조작을 뚜껑으로 덮은 것이 2기이다. 옹관묘에는 유아와 소아만 매장되고, 토광묘에는 성인이 주로 묻혔는데, 이들 무덤에서는 인골이 양호하게 남아있어 당시 사람들의 형질 및 사회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유적의 중심시기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해당한다.
- 부산 노포동고분군
- 부산시 금정구 노포동 지하철 차량기지 동쪽 구릉의 사면에 위치하는데, 1984년 부산시립박물관에 의해 목곽묘 3기가 발굴되었고, 1985년 10월부터 86년 1월까지 부산시립박물관과 공동으로 청동기시대 주거지 2동과 삼한시대 후기의 목곽묘 42기, 옹관묘 6기를 발굴하였다. 유물은 토기 100여점, 철기 160여점, 구슬 및 기타 300여점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중심시기는 3세기 후반으로 중·소형의 목곽묘가 주류를 이루는데, 당시 주변 집단의 묘제는 물론 부산지역의 문화양상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합천 저포E지구유적
- 경남 합천군 봉산면에 위치하며, 합천댐 건설로 인해 1986년 11월부터 87년에 걸쳐 발굴조사되었다. 저포리 일대의 낮은 평지에서 지석묘(支石墓) 9기, 향강(香江) 옆 3개의 구릉에서 주거지 7동, 고분(古墳) 27기를 조사하였다.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지석묘는 부석(敷石)을 깔아 묘역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강 바로 옆의 비교적 높은 구릉에서 조사된 주거지는 장방형의 수혈주거지(竪穴住居址)인데 구순각목공렬문토기(口脣刻目孔列文土器)로 보아 지석묘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을 주체로 하는 대형봉토분은 6세기에서 7세기 전반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4호분에서는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로 판독되는 명문이 새겨진 항아리가 출토되어 가야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제공되었다.
- 울산 검단리유적
- 경상남도 울산시 웅촌면 검단리 낮은 구릉의 정상부와 경사면에 위치하는 청동기시대의 취락, 분묘 복합 유적이다. 발굴은 1990년 2월 3일부터 4월 22일까지 80일간에 걸쳐 4,000여평에 조사되었는데, 청동기시대의 환호(環濠)와 주거지 93동, 수혈 3기, 구(溝) 12기, 분묘 3기, 삼국시대의 숯가마 2기, 조선시대의 묘막지 2동과 무덤 2기가 검출되었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 560여점, 석기류 230여점이다.
마을은 방어 시설인 타원형의 환호를 중심으로 내부와 외부에 주거지가 분포된 상태로 형성되어 있고, 주거지 사이에는 광장으로 추정되는 공지와 제사 시설로 보이는 구(溝)가 분포하고 있으며 무덤은 주거지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별도로 위치하고 있다. 환호의 길이는 약 400m에 이르며 남북 양쪽에 1개씩의 입구가 나 있다. 주거지는 내부에 1~2기의 노지가 있는 방형 또는 장방형의 수혈주거지로 2~3기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마을 유적의 연대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늦은 시기로 추정된다. 이 외에 삼국시대 요지 2기는 제철에 필요한 백탄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제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 경상남도 울산시 웅촌면 검단리 낮은 구릉의 정상부와 경사면에 위치하는 청동기시대의 취락, 분묘 복합 유적이다. 발굴은 1990년 2월 3일부터 4월 22일까지 80일간에 걸쳐 4,000여평에 조사되었는데, 청동기시대의 환호(環濠)와 주거지 93동, 수혈 3기, 구(溝) 12기, 분묘 3기, 삼국시대의 숯가마 2기, 조선시대의 묘막지 2동과 무덤 2기가 검출되었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 560여점, 석기류 230여점이다.
- 울산 하대유적
- 외질토기 유적의 지표가 되는 중요한 유적인 울산 하대유적을 우리 박물관에서는 연차적인 학술발굴 조사계획을 수립하여, 1991년과 1992년에 2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3세기대의 대·소형 목곽묘(木槨墓) 다수가 확인되었는데, 소형분에 의한 대형분의 파괴, 유물 매납양상의 변화, 특히 실용적인 철제 무구류의 집중 매납화 경향 등 여러 가지 특징들이 확인되고 있다. 유물로는 오리형토기를 비롯한 각종 토기와 철기, 청동환(靑銅環), 목제 빗, 옥류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철기 농기구류가 풍부하게 검출되었는데, 따비, 보습, 가래 등은 당시의 중산업인 농업을 대형분의 주인공 집단이 통제하고 있었다는 상징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외질토기 유적의 지표가 되는 중요한 유적인 울산 하대유적을 우리 박물관에서는 연차적인 학술발굴 조사계획을 수립하여, 1991년과 1992년에 2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 양산 신평유적
-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순지리에 위치하며, 못안못의 주위 구릉 지대에 유적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1977년 지표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어 통도환타지아 유원지 건립에 따라, 1992년 1월 16일~3월 3일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은 못안못의 서쪽과 북쪽 구릉을 A, B의 두 지구로 구분하여 실시하였다. 여기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21동과 옹관묘 6기, 토광 1기와 시기불명의 소형 석관 1기가 검출되었다. 주거지는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2~3기가 무리를 이루어 분포하고 있는데, 전부 장방형 수혈주거지(長方形竪穴住居址)이며, 청동기시대 전기에 속한다. 옹관묘는 구릉의 사면에 위치하며 삼한시대 전기에 속하는 것이다.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 및 삼한시대 전기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김해 봉황대유적
-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순지리에 위치하며, 못안못의 주위 구릉 지대에 유적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1977년 지표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어 통도환타지아 유원지 건립에 따라, 1992년 1월 16일~3월 3일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은 못안못의 서쪽과 북쪽 구릉을 A, B의 두 지구로 구분하여 실시하였다. 여기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21동과 옹관묘 6기, 토광 1기와 시기불명의 소형 석관 1기가 검출되었다. 주거지는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2~3기가 무리를 이루어 분포하고 있는데, 전부 장방형 수혈주거지(長方形竪穴住居址)이며, 청동기시대 전기에 속한다. 옹관묘는 구릉의 사면에 위치하며 삼한시대 전기에 속하는 것이다.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 및 삼한시대 전기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청도 오진리 암음유적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 산 72-1번지에 위치하며 운문댐 건설로 1993년 8월부터 약 3개월간 발굴하였다. 퇴적층은 크게 4층으로 구분되는데, Ⅰ층은 무문토기 마지막 단계의 삼각구연점토대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주거지와 Ⅱ층에서 출토된 토기는 이중구연토기와 아가라 부분에만 격자문이나 침선문이 시문된 퇴화된 빗살무틔토기이며, Ⅲ층에서는 전형적인 남해안식 태선침선문과 단사선문토기, 영선동식 압인문계, 자돌점열문계 문양이 복합 또는 단독으로 시문된 토기, 융기문토기가 출토되었다. Ⅳ층 토기는 문양 및 정면기법상에서도 상부층 토기들과 뚜렷이 구별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어 “오진리식토기(梧津里式土器)”로 명명하고 융기문토기보다 앞서는 신석기시대 초창기 토기 중의 하나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 창녕 계성고분군
- 영취산 산록에서 서쪽으로 뻗은 구릉들에 분포된 고분군으로 경남 창녕군 계성면 명리와 사리에 해당한다. 1976년 구마고속도로 건설 공사시에 A, B, C 세 개의 지구로 나뉘어 이미 한 차례 발굴조사된 이 유적은 다시 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1994년 3월부터 약 4개월간 A, B 양지구를 발굴조사하였다. A지구는 단곽구조(單槨構造), B지구는 2~3개의 석실로 이루어진 다곽구조(多槨構造)의 횡구식석실(橫口式石室)이다. 계성고분군 축조 시기는 출토 유물로 보아 6세기 전엽에서 7세기 전반대까지로 추정되며, 이 번 조사에서 “대간(大干)”등의 명문토기가 수 점 더 확인되었다.
- 산청 방목리유적
- 1993년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구간이 확정되면서 산청 방목리 백자가마터의 파괴도 불가피해짐에 따라 경남ㆍ부산유적보존협의회의 산하 합동발굴조사단에서 발굴을 맡게 되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전기 백자가마 3기와 그 폐기장 등이 조사되었다. 가마는 각각 다른 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에서 가마구조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중앙 관요(官窯)와는 다른 지방가마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산품의 일부는 지방 관아(官衙)에 공납(貢納)했겠지만, 주로 일반 민수용으로 공급되었다고 보인다.
조선시대 전기의 가마는 많이 분포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조사례가 없던 산청지방에 본 조사를 통해 경남 및 타 지방가마와 비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되어 이의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1993년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구간이 확정되면서 산청 방목리 백자가마터의 파괴도 불가피해짐에 따라 경남ㆍ부산유적보존협의회의 산하 합동발굴조사단에서 발굴을 맡게 되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전기 백자가마 3기와 그 폐기장 등이 조사되었다. 가마는 각각 다른 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에서 가마구조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중앙 관요(官窯)와는 다른 지방가마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산품의 일부는 지방 관아(官衙)에 공납(貢納)했겠지만, 주로 일반 민수용으로 공급되었다고 보인다.
- 김해 대청유적
- 김해 장유면 일대의 대규모 택지조성사업으로 확인된 본 유적은 대청리 269번지 독립구릉의 북동족 평탄대지와 동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청동기시대~삼국시대의 주거지 및 수혈유구 39기, 삼국시대의 석실묘 1기, 석곽묘 1기, 화장묘 4기, 고려~조선시대 토광묘 및 목관묘 12기 등 전부 57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원형점토대토기 관계의 주거지와 수혈은 이 시기의 자료가 극히 미미한 경남지역에서 당시 문화상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가야시기에 속하는 주거지도 당시의 생활상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 밀양 고례리유적
- 경남 밀양군 단장면 고례리에 위치하며, 밀양댐 건설에 따른 수몰지역 전체에 대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에서 새롭게 확인된 유적으로 1996년 11월부터 약 8개월간 발굴조사가 실시되었고 지금은 밀양댐 속에 수장된 상태이다. 문화층을 포함한 퇴적층은 황갈색 점토퇴적층이며, 이러한 점토 퇴적상황은 우리나라 후기구석기유적 퇴적형태의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출토유물 수는 7천점에 달하며, 몸돌, 돌날, 슴베형석기, 찌르개, 격지 등 다양한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고례리유적은 유물 출토량은 물론 유적의 크기, 유물의 다양성 등에서 영남지역에서 후기 구석기문화상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유적임과 동시에 돌날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몸돌과 다량의 잘 다듬어진 돌날, 돌날을 이용한 찌르개 및 각종 도구들을 포함하고 있어 돌날격지문화(石刃文化, Blade industry)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김해 삼계동유적
- 김해시 택지개발사업과 관련된 구제발굴로 인해 확인된 유적으로 통일신라시대 가마 4기와, 조선시대 민묘가 다수 조사되었다. 이미 형질변경이 심하게 이루어진 지역이어서가마의 구조는 복원되지 않는다. 출토유물은 토기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동이, 뚜껑, 병, 접시, 완, 대부완, 등잔 등이 출토되었다. 인화문토기를 비롯하여 8~9세기의 통일신라 시기의 토기가 대부분이며 완형은 거의 없고 파편이 많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의 조사와 보고례가 드물기 때문에 출토된 토기 자체만으로도 이 시기의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 울산 방기리유적
- 우리 박물관에서 조사한 양산 신평유적과 인접한 구릉에 위치하는 유적으로, 비록 조사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5동에 불과하지만, 이 지역일대에 대규모의 청동기시대 취락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수차에 걸친 지표조사로 확인한 바 있다. 여기서 검출된 주거지의 형태는 울산과 양산, 경주 등 한반도 동남부지역에 특징적으로 분포하는 소위 ‘검단리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신평유적과 함께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취락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조선시대의 움집터 9동과 목관묘 1기도 발견되었다.
- 사천 늑도B지구 유적
- 본 유적은 1979년부터 부산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학계에 알려진 후 1985년과 1986년 두 차례에 걸쳐 학술발굴이 진행된 바 있다. 1998년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는 삼천포-창선간 도로개설구간에 대한 구제발굴로서, 경남고고학연구소(A지구), 부산대학교박물관(B지구), 동아대학교박물관(C지구)에서 지역을 분할하여 공동으로 발굴하였다. 다량의 주거지와 수혈, 고상건물지, 무덤, 기둥구멍 등을 비롯하여 패총이 형성되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원형과 방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원형이 대다수이며, 내부에 온돌시설과 부뚜막이 설치된 주거지도 있었다. 수혈은 다양한 형태로 다수가 밀집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가 대부분이며, 패총구역에서는 다량의 골각기와 동물뼈가 출토되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삼각형점토대토기를 비롯하여, 야요이토기와 낙랑토기 등 다량의 외래계유물도 출토되어 늑도유적이 고대의 교역과 항해와 관련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이 재차 확인되었다.
- 진주 집현유적
- 발굴구역은 진주-집현간 4차선 도로건설구간 내 A구역에 해당되며 경남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 651번지에 위치한다. 이중 구석기는 유적의 약 1/3에서 확인되었으며, 구석기유물이 출토하는 점토층 위에 청동기시대부터 현대에 걸친 전답이 발굴구역 전 구간에 걸쳐 형성되어 있었다. 출토된 석기는 좀돌날 몸돌, 좀돌날, 밀개류가 중심이나 일부 간석기(磨製石器)를 포함하고 있다. 종래 타유적에서 뗀석기(打製石器)로만 구성되어 있던 구석기 문화상에서 장흥리의 문화상은 좀돌날몸돌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동시에 일부 간석기를 포함하고 있어 새로운 유형의 문화상으로 인식된다. 진주 집현 장흥리유적은 좀돌날문화(Micro blade culture)의 성격을 강하게 풍기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유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문화상은 갱신세와 현세의 전환기 문화에 관한 연구를 진척시키기 위한 중요한 전형적인 유적(Type site)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부산 해운대 좌동고분군
- 부산시 해운대 좌동 군 복지시설 사업지구내 조사로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복천분관과 연합발굴조사로 이루어졌다. 단일지역에 구석기시대 문화층, 삼국시대 수혈식석곽묘, 횡구식석실분, 토광묘, 제사유구, 조선시대 분묘 등이 혼재해 있는 복합유적으로 해운대 일대와 한반도 동남해안지역의 선사~근대에 걸친 문화연구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